interview_2019 > 아우디 코리아

Audi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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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드로잉은 현장에서 하나의 퍼포먼스나 쇼처럼 빠른 속도로 그리는 예술 장르예요. 어떤 계기로 라이브 드로잉을 하게 되었나요?

2011년에 열린 부천국제만화전에 초대되었어요. 부스를 꾸밀 때 보통 삼면의 벽에 액자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 소속되어 있는 만화 기업 ‘수퍼 애니’의 대표님이 색다른 제안을 했어요. 벽 전체에 종이만 붙이고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자고. 재미있겠다 싶었죠. 관람객이 오면 사인도 해주고 대화도 나누면서 3일 간 그림을 그렸어요. 그 모습을 간단하게 영상으로 촬영한 후 장난 삼아 유튜브에 올렸는데, 조회수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 이후 해외 초청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라이브 드로잉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파급 효과가 그렇게 클 줄은 상상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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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가로 그림을 시작하신 건가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었을 때 우연히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등을 그렸던 일본 유명 만화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림을 본 후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리려면 만화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한결 같이 만화가를 꿈꿨죠.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그런 칭찬에 고무되어 더 열심히 그렸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처음으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미대 서양화과에 진학했지만, 군대 제대 후 3학년 1학기 때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만화판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27살에 '소년 챔프'라는 만화 잡지를 통해 첫 등단을 했어요.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려 완성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워요.
평소에 수없이 연습을 하시는 건가요?

해외에서도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가장 많이 질문해요.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이 그렸어요. 아마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일 거예요. 초등학생 때도 하루에 3~4시간 정도는 그렸던 것 같고, 고등학교 시절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고 뒷자리에 앉아 계속 그린 적도 있어요. 그런 후 미술학원에 가서 4시간 동안 그리고, 밤에 집에 가서 또 다시 새벽 1~2시까지…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그린 거죠. 지금보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공책의 외곽 여백부터 달력 종이 뒷면, 벽지까지 여백만 보이면 가리지 않고 그렸어요. 부모님께 야단도 많이 맞았죠(웃음). 또 어릴 적부터 시각적인 기억 능력과 관찰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유치원생들은 보통 평면으로만 그리는 데 반해, 나는 그 때부터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곤 했어요. 한 면만 보는 게 아니라 후면, 반측면, 측면 등 사물의 여러 면을 인지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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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프로젝트 외에, 평소에 어떤 그림들을 그리나요?

늘상 소지하고 다니는 그림 노트가 있어요. 작은 스케치북에 가족과의 여행, 업무 미팅할 때의 모습, 광고 촬영 현장, 내가 좋아하는 바이크와 자동차 혹은 영화 등… 일상 속의 수많은 장면에서 받은 느낌과 그 때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기록해요. 그 자리에서 그리는 것도 있고, 집이나 호텔로 돌아온 후 눈으로 보고 느꼈던 이미지들을 그린 것도 있죠. 글이 아닌 그림으로 적는 일기인 셈이예요. 지금까지 그린 그림 노트의 수가 굉장히 많아요.

다른 라이브 드로잉 작가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요?

소재가 다양하다는 점이예요. 보통 작가 본인이 좋아하거나 주목하는 하나의 소재를 지속적으로, 여러 버전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에 반해 내 드로잉은 소재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아주 사소한 주변의 일상적인 사람과 사물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 어떤 장소의 풍경들, 장면들에서 받은 느낌을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해요. 행사장에서 그릴 땐 구경 온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어떤 걸 그릴까요, 하고. 그게 무엇이든, 관객의 요청에 따라 즉석에서 바로 그려내요. 그동안 보고 느끼고 기억했던 내 머리 속의 자료와 지식들을 끄집어내는 거죠. 그리는 대상의 100퍼센트가 아닌, 특징적인 이미지를 캐치하고 기억해 60~70퍼센트 정도 구현한다고 할 수 있어요.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펜 종류를 이용해 한 번의 필치로 그리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실수를 하거나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표현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많죠. 그래서 바둑 둘 때처럼 서너 수를 더 앞서 예측하면서 그려요. 이 부분을 그리면서 다음에 그릴 것을 미리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도 실수를 할 때가 많아요. 계속 라이브 드로잉 작업을 하다 보니 실수를 적절히 보완해 내는 순발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요(웃음). 생각했던 대로 결과물이 나온 적은 별로 없어요. 그럴 때마다 머리 속이 과부하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짜릿함이 있죠.

이번엔 R8의 한쪽 표면에 라이브 드로잉으로 작업하셨어요. 아우디와의 첫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아우디가 추구하는 미래 자동차에 대한 청사진을 이미지로 표현했어요. 아우디 코리아에서 아우디 고객과 팬들을 대상으로 미래에 자동차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죠.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자동차가 지금보다 훨씬 스마트해지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응답을 했더라고요. 지문으로 시동을 걸고, 손바닥만 살짝 대도 탑승자의 그 날 기분이나 바이오리듬을 체크해서 그에 맞는 음악을 선택해 주고, 차 안에서 책 읽기나 게임도 즐기고… 그런 이미지들을 표현했어요. 그 옆에는 아우디의 최신 기술들, 전기차인 e-트론, R8의 V10 엔진 등을 그렸고, 뒷바퀴 쪽에는 스키 슬로프에서 주행하는 모습으로 아우디 콰트로의 특별함을 표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를 구현했고요.

종이나 캔버스 같은 평면과는 달라서 조금은 낯설었을 것 같아요.

곡면과 굴곡이 있어 처음엔 힘들었지만, 그리기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더라고요. 또 생각보다 면적도 넓어 10시간 정도 걸렸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 달라진 부분도 있어요(웃음).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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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협업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향후 계획은요?

루브르 미술관과 협업하는 프로젝트와 내가 원하는 나라의 도시를 3주 간 여행한 후 그림으로 트래블 북을 만드는 루이비통과의 협업 계획도 있어요. 영화, 공연, 문학… 무엇이든, 어떤 장르든 내 느낌을 그림으로 자유롭게 구현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어요. 실제로 파리 필하모니의 연주자들과 함께 클래식 공연 무대에서 연주와 동시에 그 느낌을 표현하는 라이브 드로잉을 한 적도 있고,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자신의 소설을 만화로 그리는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해서 스케줄 조율을 하고 있고요. 최근 봉준호 감독의 전작부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까지 구현하는 라이브 드로잉 쇼도 했어요. 프랑스, 일본 등에서 계속 전시 계획이 잡혀 있고, 국내에서도 곧 전시를 하고 싶어요.
글: 이정주/사진: 이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