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친절한 맹수를 봤나,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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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아우디 R8이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맹수를 봤나,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

제품 이야기,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도로를 달리고 있는 R8의 뒷모습입니다.

▶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 내연기관의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길 [시승기]

왠지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가 내 앞에 멈췄을 때,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래야 할 듯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이 시대의 몇 안 남은 내연기관의 로망을 품은 자동차니까. 모두 배기량을 줄인 지 한참 지났다. 실린더 개수마저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다운사이징의 시대. 급기야 이젠 전기모터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갔다. 내연기관, 특히 고배기량 고성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혀를 찬다. 시대의 흐름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상실감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차에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는 허전함을 위로한다.

똑 떨어지는 숫자, V10! 게다가 자연흡기 엔진이다. 배기량은 두둑한 5,204cc. 어느 하나 지금 시대에는 낯선 제원이다. 고성능이라도 다운사이징의 흐름을 벗어나기 힘들다. 라이트사이징이라고 돌려 말해도 알 건 안다. 물론 고성능 또한 고효율을 지향하는 기술에는 탄복할 만하다. 그럼에도 전통적 형태로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숫자를 품으면 달리 보인다.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 앞에서 자세를 가다듬은 이유다. 여전히 고회전, 고배기량 엔진 품은 자동차의 정서를 유지하니까. 내연기관의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길 바라는 그 마음.

아우디 R8이 길에 서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아우디 R8을 시승했다. 1세대 R8이었다. 그때 느낀 과격함이 떠올랐다. <아이언맨> 시리즈로 친근해 보여서 만만하게 봤다. 운전하면서 약간 질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레이싱 DNA 품은 흉포함에 휘둘려서. 몸을 꽉 옥죈 시트에, 노면 상태를 적나라하게 전달하던 하체까지 신경을 뾰족하게 벼렸다. 앉아서 내릴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종일관 흥분 상태. 생긴 그대로 본격적이구나 싶었다.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운전을 전달하는 머신의 느낌. 아우디 엠블럼이 낯설 정도였다. 절로 아, R8을 르망에서 갈고닦은 기술로 만들었지, 하고 이해했다. 이런 기억 역시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 앞에서 짐짓 긴장하게 했다.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는 2세대 부분 변경 모델이다. 우선 외관에서 날카로운 직선이 도드라진다. 과감하고 분명한 직선으로 이목구비를 강조했다. 위압적으로 커진 싱글 프레임 그릴 또한 직선의 힘을 내세운다. 아우디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성이다. R8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미드십 엔진을 품은 차체 비율 덕분에 인상은 더욱 강렬하다. 다른 종족으로 보이게 하는 슈퍼 스포츠카의 그 실루엣이다. 측면의 무광 은색 사이드 블레이드는 한층 더 낯설게 한다. 미드십 슈퍼 스포츠카다운 공기 흡입구을 더욱 강조한다. 장식과 기능의 절묘한 조합이다.

아우디 R8을 위에서 본 장면 입니다.

떡 벌어진 뒤태 역시 공도에서도 레이싱 트랙을 연상하게 한다. 발톱처럼 도드라진 리어 디퓨저와 타원형 듀얼 배기구도, 멋이 아닌 용도 확실한 특징으로 스며든다. 무엇보다 V10 심장을 전시하는 뒷면 유리와 대형 리어 스포일러는 한참 시선을 멈추게 한다. 타기 전에 운전자의 심장을 예열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각 요소가 R8의 진지함을 표현하니까.

낮은 시트에 몸을 끼워 넣었다. 잠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티어링 휠의 아우디 엠블럼과 버추얼 콕핏 디자인은 익숙한데, 뭔가 달랐다. 센터페시아에 모니터가 없었다. 스티어링 휠에 못 보던 버튼도 여럿 보였다. 갈수록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실내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시대다. 어떻게 하면 디스플레이 크기를 늘려 미래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골몰한다.

하지만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는 어떻게 하면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게 할지 고민했다.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니니까. 5.2리터 자연흡기 V10 엔진, 즉 내연기관의 로망을 음미하는 데 집중하라는 무언의 지침 같았다. 처음에는 허전했다. 점점 눈에 익을수록 간결함이 도리어 화려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자동차다운 특별한 구성. 실내 역시 운전자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했다.

아우디 R8이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옛 기억과 현재 감흥이 쌓아올린 긴장감이 실내에 차올랐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포할까. 완전한 오산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순식간에 긴장감이 사라졌다. 부드러웠다. 고성능 자동차는 시내에서 피곤한 게 사실이다. 으르렁거리는 맹수를 느린 걸음으로 걷게 해야 하니까. 내가 알던 R8이 아닌데? 못 본 세월 동안 잘 훈련받아 온순해진 느낌이었다.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 없는 슈퍼 스포츠카. 긴장감이 사라지면 즐기는 시간만 남은 셈이다.

도로를 매끄럽게 유영하듯 달렸다. 그렇게 R8이 이끌었다. 트랙도 아닌데 부드럽고 불편하지 않은 감각들 덕분이었다. 그러면서 고출력의 풍성함이 발끝에서 느껴졌다. 안락하면서도 민첩한 감각은 금세 R8의 영역에서 즐기게끔 했다.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나만 다른 시공간에 놓인 이질적인 쾌감이랄까. 극도로 낮은 시트고는 도로의 풍경을 바꿨다. (상대적으로) 안락한 하체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출력 특성은 언제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게 했다. 다소 과장하면 흡사 경량 펀카를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아우디 TT 같은 작고 경쾌한 감각들. 이렇게 편한 슈퍼 스포츠카라니. 예전 기억이 희미해졌다.

주행모드를 자동에서 스포츠로 바꿨다. 주행모드 버튼이 스티어링 휠에 달려서 한결 편했다. 스티어링 휠로 옮겨간 버튼들이 스포츠카다운 멋도 내지만, 역시 운전에 집중하게 했다. 합당한 위치였다. 스포츠모드로 바꾸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흉포한 미드십 슈퍼 스포츠카의 본성. 반응성이 한결 빨라지며 실내에 포효 같은 배기음이 뒤엉켰다. 뒤에서 들리는 V10 엔진의 음색이 달라졌다. 순식간에 클라이맥스로 접어들었다. 8500rpm 레드존에 가까이 갈 때마다 기분이 들끓었다.

아우디 R8 실내에서 실외를 내다본 장면이며 백미러가 보입니다.

역시 마냥 편하기만 할 리 없었다. 스포츠모드는 봉인 해제였다. 자동모드가 편한 만큼 변화가 극적이었다. 스티어링 휠에는 체커기 버튼도 있다. 누르면 ESC도 꺼지는 온전한 머신으로 변신한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비 오는 날이었고, 맹신할 운전 실력도 없었다. 아우디 콰트로가 믿음직해도 과욕은 금물이니까.

시외 한적한 도로에서 R8과 달뜬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내로 진입했다. 출발할 때보다 더 교통량이 증가했다. 다시 자동모드가 진가를 발휘했다. 언제 들끓었나 싶게 시침 뚝 떼는 부드러움.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은 무엇보다 너른 품이 인상적이었다. 아우디 TT 같은 펀카부터 진지한 슈퍼 스포츠카까지, 변신의 폭이 넓었다. 내연기관의 로망을 간직한 차로서 배려심도 출중하달까. 쓰임새 좋은 슈퍼 스포츠카. R8에 관한 기억을 수정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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