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콰트로와 함께 구름 뚫고 정상에 선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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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우승 당시 아우디 콰트로 S1

아우디 콰트로와 함께 구름 뚫고 정상에 선 그녀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아우디 후배 여성 레이서들과 함께한 미셸 무통

▶ 온갖 방해 극복하고 WRC 역사상 유일하게 우승컵 안은 여성, 미셀 무통

아우디는 오래전부터 자율주행 기술을 도로 위에서 테스트해왔다. 테스트에 사용된 자율주행 모델들엔 독특하게 잭, 바비, 로비 등 사람 이름이 붙여졌다. 그 시작은 셸리(Shelly)였다. 셸리는 스포츠 쿠페 TTS를 이용해 아우디와 폭스바겐, 그리고 스탠퍼드대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별명이다.

셸리는 2009년 미국 유타주에 있는 소금 사막에서 최고 210km/h로 혼자 달리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콜로라도에서 그 유명한 파이크스 피크 산악 레이스용 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총 156개의 코너가 있는 19.99km 거리를 27분 만에 달렸다. 최고속도는 72km/h였다.

이 자율주행차에 붙여진 셸리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파이크스 피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바로 아우디 레이싱팀 소속으로 1985년 파이크스 피크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이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현재까지 자동차 랠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드라이버로 남아 있는 미셸 무통(Michèle Mouton)이 그 주인공이다.

미셸 무통

◆ 운전이 재미있던 소녀

미셸 무통은 19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이미 운전의 매력에 빠진 그는 21세 때 아마추어 레이서였던 친구의 경기를 보러 갔다 우연히 코-드라이버(CO-PILOT) 역할을 하게 된다.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미셸 무통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1974년 알피느 A110을 마련해주며 랠리 드라이버로 딸이 성공하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된 레이서로의 삶은 시작부터 화려했다. 프랑스 여성 챔피언십과 프랑스 GT 클래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75년에는 대표적 내구레이스인 르망 24의 2리터 프로토타입 카테고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뛰어난 실력은 그녀가 메이저 레이싱팀에서 전문 랠리 레이서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1977년 피아트팀에 들어갔고,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아우디팀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파브리지아 폰즈(사진 좌측)와 우승을 축하하고 있는 미셸 무통(사진 우측) / 사진=위키피디아

◆ 아우디의 깜짝 전화, 그리고 놀라운 성취들

1980년 아우디 레이싱 팀은 미셸 무통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무통은 전화를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남성 레이서들이 지배하고 있는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아우디와 같은 큰 팀이 여성인 자신을 선택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1981년 미셸 무통은 세계 랠리 선수권대회(WRC)에 참가했다. 첫 번째 대회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엔진 문제를 겪었으나 포르투갈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코드라이버 파브리지아 폰즈와 좋은 팀워크를 보이며 종합 4위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탈리아 산레모 랠리에서 그녀는 아우디 콰트로로 우승컵을 차지한다. 이는 WRC 역사상 첫 번째 여성 드라이버의 우승이자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유일한 여성 드라이버 우승 기록이다.

아우디 TTS 자율주행 콘셉트카 셸리

미셸 무통의 WRC에서의 질주는 광기의 그룹 B가 시작된 1982년 절정을 이룬다. 포르투갈, 그리스, 그리고 브라질 등에서 펼쳐질 랠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비록 첫 대회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무릎에 부상을 입는 등 어려움을 겪지만 1982년은 세계 랠리 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시기였다. 하지만 신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오펠팀의 드라이버였던 독일 레이서 발터 뢰를과 치열한 다툼을 하던 미셸 무통은 코트디부아르 랠리에서 뼈아픈 실수를 하게 되고 줄곧 1위를 달리던 그녀는 결국 발터 뢰를에 이어 종합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깝게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사내들의 레이스라는 당시 WRC에서 여성으로 종합 2위의 자리를 오른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우디팀은 이후 1983년 한누 미콜라, 그리고 1984년 스티그 브룸퀴스트가 연속해 세계 랠리 선수권대회 타이틀을 차지했다. 미셸 무통은 팀 동료들이 연이어 권좌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도전 기회가 찾아온다. 1984년 콜로라도 파이크스 피크에서 열리는 산악 레이스에 참가했고, 랠리카들이 참여한 최상위 ‘언리미티드 클래스’ 1위, 종합 2위라는 성적을 냈다. 기술적 실수만 아니었다면 종합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83년 아크로폴리스 랠리 당시 모습

◆ 온갖 편견과 방해를 극복하고 얻은 우승

그녀는 단념하지 않았고 1985년 다시 도전했다. 해발 2,800미터 높이의 지점에서 출발해 19.99미터를 달려 해발 4,300미터에 있는 결승점에 가장 빨리 도달하면 된다. 말 그대로 구름을 뚫고 가는 랠리였다. 미셸 무통은 유럽의 랠리카들이 정식 참여한 첫해에 종합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성 레이서로 첫 번째 우승이었다. 2년 후에는 아우디팀으로 자리를 옮긴 발터 뢰를까지 정상에 오르는 등, 산악 경주에서 아우디팀은 놀라운 연승 기록을 세웠다.

미셸 무통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때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그 대회) 주최자들은 제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그들은 터보가 달린 랠리카를 처음 본 것 같았죠. 거기다 유럽 여성 드라이버도 처음 본 듯했어요.”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연습 때부터 자신의 등장이 못 마땅한 주최 측이 방해를 했다. 벌금을 물리는 등, 출발 자체를 못 하게 막았다고 전했다. 언론에 이런 불평등한 대우를 폭로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겨우 레이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성 레이서의 실력을 그들은 믿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미셸 무통은 우승으로 편견을 날려 버렸다.

1987년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우승 당시 아우디 콰트로 S1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2년 동안 WRC에 참가해 50회 랠리에서 4회 우승을 차지했다. 포디움에는 총 9회 올랐으며, 스테이지 162회 승리했고, 총 229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리고 파이크스 힐스 국제 힐 클라임(PPIHC)에서 종합 우승을 포함, 2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가장 화려한 순간, 영광의 시간을 아우디 콰트로와 함께 한 것이다.

현재 많은 여성 레이서가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 경주 대회 자체를 남자들의 스포츠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남성 드라이버들과 겨뤄 얻어낸 승리이기에 가치는 더 크다. 과연 누가 그녀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 그 어떤 기록보다 오래도록 빛날 타이틀을 미셸 무통이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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